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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팔로워 늘리기 [김재인의 피지컬 vs 디지털]문자력이 무너지면 인류는 단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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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2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6-1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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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팔로워 늘리기 문자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문자가 인간의 인지에 끼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찬반 격론이 있었다. 플라톤이 지은 <파이드로스>에는 그 대결 장면이 잘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신 테우트는 이집트의 왕 타무스에게 자기가 발명한 문자를 소개하며 이렇게 자랑했다. “왕이여, 이런 배움은 이집트 사람들을 더욱 지혜롭게 하고 기억력을 높여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억과 지혜의 묘약으로 발명된 것이니까요.”
하지만 타무스는 반박했다. “그것은 그것을 배운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 무관심하게 해서 그들의 영혼 속에 망각을 낳을 것이니, 그들은 글에 대한 믿음 탓에 바깥에서 오는 낯선 흔적들에 의존할 뿐 안으로부터 자신의 힘을 빌려 상기하지 않을 것이오.”
테우트는 문자, 즉 외장 기억이 기억의 확장을 뜻하기에 인간의 인지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았다. 반면 타무스는 스스로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문자에 의존하게 되어 결국 인지 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딘지 익숙해 보이는 이 논쟁은 오늘날 인공지능(AI)을 둘러싸고 되풀이되고 있다. 혹자는 AI 덕분에 인간의 생산성이 엄청나게 확장했다고 찬사를 보낸다. 어떤 이들은 AI에게 인지 활동을 외주 줌으로써 정작 개개인의 인지 능력이 퇴화 혹은 탈숙련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역사는 테우트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문자가 없었을 때는 머릿속에 기억을 담아두어야 했고, 따라서 기억의 양도 제한적이고, 다른 일에 쏟을 인지 자원도 부족했다. 문자가 발명되고 나서는 기억에 쏟는 시간은 줄었고 추가로 다른 인지 활동이 가능해졌다. 넓은 의미의 철학(학문)이 탄생한 배경이다.
문명은 문자의 도움 덕에 급속히 발전했다. 그렇다면 같은 원리가 AI에도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까? 오늘날 AI가 인지, 교육, 문명에 끼칠 영향을 둘러싼 논란을 이런 맥락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따져보기 위해 문자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 분석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개인으로 여기는 관점을 버리는 일이다. 인류학자 아구스틴 푸엔테스의 표현을 쓰면, 인간은 ‘집단으로 창의적인 종’이다. 개개인의 창의성은 집단 수준에서 보존되고 전승되지 않으면 그 개인의 죽음과 함께 증발하고 만다. 역사는 개개인의 창의적 결과물을 집단이 학습하고 공유해서 후대에 전달하는 ‘교육’이라는 활동의 중요성을 증언한다. 이런 공동 활동 자체가 인간의 본질이다. 나는 이를 ‘공동 뇌(co-brain)’라고 규정한 바 있다.
타무스는 문자 때문에 개인의 기억력이 저하되는 것을 걱정했다. 이 주장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보면 되니까, 문자 기록만 믿고 정작 본인은 기억하려는 노력을 덜 하게 될 테니 말이다.
AI는 ‘지식 생산’에 부정적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놓고 봤을 때 문자의 역할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내용이 일단 기록된 이상, 글을 읽을 줄 아는 누구나 그것을 열람할 수 있다. 이제 기억은 개인의 뇌를 벗어나 양으로나 범위에서나 폭발적으로 확장한다. 문자는 개개인 바깥에 집단의 공동 뇌를 형성했다. 테우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문명사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래 세대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현세대가 아무리 풍요롭게 공동 뇌를 구축해 놓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이어받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따라서 미래 세대가 기성세대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은 필수이다. 가장 중요한 실력은 ‘읽는 능력’, 더 정확히는 읽고 쓰는 문자력(literacy)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자는 5300년쯤 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명되었다. 문자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며, 아동기에 배워야만 능력이 되는 후천적 능력이다. 듣고 말하는 구어 능력은 타고났지만, 구어와 문자를 연결하려면 고된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 문자력 교육은 인류 차원의 과업이다. 자신이 직접 읽고, 요약하고, 번역하고, 해석하고, 쓰지 못하면 과거의 유산, 즉 공동 뇌를 써먹지 못한다.
이처럼 문자의 역할은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전체 집단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문자는 본격적인 의미의 ‘인류’를 발명했다.
그렇다면 문명사의 차원에서 AI의 역할은 어떨까? 문자를 해석하고 이해한 관점에서 질문해보자. AI는 인류의 기억을 확장할까? AI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두 물음에 대한 답은 모두 부정적이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와 그의 MIT 동료들이 쓴 최신 논문 ‘AI, 인간 인지, 그리고 지식 붕괴’(2월20일)는 첫째 물음에 답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AI는 세상사에 관련된 지식을 생산하는 데 부정적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지식을 두 부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일반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특화 혹은 맥락 특화 지식’이다. 전자는 사회 혹은 전체 공동체가 공유하는 지식으로, 공동체 내 모든 개인의 학습 노력에 의해 형성된다. 공동 뇌라 할 만하다. 후자는 의사결정자가 처한 구체적 상황이 일반 지식의 어디에 놓여 있는지 집어주는 역할을 한다.
개인이 생산한 대부분 일반 지식은 개인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로 흘러넘쳐 다른 개인들에게도 추가적인 도움을 준다. 이처럼, 각 개인의 학습 노력을 통해 생산된 일반 지식은 공동체 안에서 순환-성장하면서 더 풍부한 일반 지식을 낳는 동기가 된다.
이에 반해 AI가 맥락 특화 추천을 할 때는 개인이 굳이 노력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인간의 추가 노력은 사라진다. 가령 의사가 AI의 진단 추천에 따르면 환자 맞춤형 진단에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직접 진단하는 과정에서 얻는 임상 경험과 일반 지식은 공동체에 축적되지 않는다.
인간 형성 핵심은 고통스러운 훈육
여기에 연구진은 중요한 요소를 첨가한다. “공동체 수준의 지식은 그 자체가 AI 모델에 넣는 입력(input)이다. 인간의 노력, 실험, 발견이 없다면, AI 모델이 모으고 살펴볼 만한 충분히 가치 있는 정보는 없을 것이다.” 이는 대담한 가정이다. AI 모델 자체는 일반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결론은 분명하다. AI는 그 자체로는 세상사에 관련된 일반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며 개개인이 일반 지식을 생산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한편, AI가 미래 세대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최근 엄청난 분량의 연구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모든 연구는 일관되게 한 방향을 가리킨다. AI의 도움은 학생들이 인지 활동을 손 놓게 만든다. 학생들의 인지 능력은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 미래 세대는 인류의 유산을 소화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나는 이를 ‘디스킬 제너레이션(deskill generation)’, 즉 탈숙련 세대의 출현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현재는 낙관론과 부정론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문자의 출현, 혹은 신기술의 출현 당시에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낙관론이 있다. 문자는 결국 문명 발전의 근간이 됐고, 컴퓨터도 발전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신기술은 인류의 일반 지식을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반면 아제모을루의 연구진이 밝혔듯, AI는 방해가 된다.
미래 세대의 인지 역량과 관련해서도, AI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역량(가령 프롬프트 능력)이 생겨날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다. 그러나 읽고 쓰는 문자력은 인간이라는 능력 자체이다. 즉,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기능하기 위한 가장 바탕의 실력이 문자력이다. 문자력이 저하되면 인류는 과거 유산을 계승하지 못하게 된다.
처음 글을 배울 때의 괴로움은 기억하기 싫겠지만, 처음 젓가락질을 배울 때의 어려움도 떠올리기 싫겠지만, 아이가 글을 읽지 못하고 젓가락질을 못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은 없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이런 고통스러운 훈육, 즉 파이데이아(paideia)를 인간 형성의 핵심에 놓았다. 인간에게는 싫더라도 꼭 해야 하는 훈련이 있는 법이다. 문자력은 모든 아이에게 파이데이아를 요구한다. 만약 AI의 달콤함에 취해 훈련의 고통을 생략한다면 인류는 AI나 기술자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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