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BGF는 책임 인정했는데 경찰은 회피···조합원 사망사고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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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는 “BGF는 전날 합의로 사측은 조합원 사망에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를 표명했으나 경남경찰청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파업 현장에서 경찰의 최우선 임무는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지만, 당시 경찰은 정반대로 행동해 조합원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경찰은 최종 책임자인 경남경찰청장을 파면하고, 숨진 유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회견 전 진주 CU진주물류센터 앞에서 숨진 조합원을 기리는 추모대회를 열기도 했다.
화물연대는 오후 3시쯤엔 진주 CU물류센터 앞에 노동절을 맞아 ‘세계노동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에 따르면 2500명이 이 자리에 참석해 숨진 화물연대 조합원을 추모하는 헌화·분향을 하고, 노동기본권 쟁취를 주제로 한 결의문 낭독 등 행사를 한다.
지난달 20일 오전 진주 CU 진주물류센터 앞 집회 현장에서 비조합원이 몰던 화물차가 조합원들을 쳐 조합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화물연대와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물류 자회사 BGF로지스는 교섭을 이어오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 진주지청에서 조인식을 열고 단체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안에는 운송료 7% 인상, 분기별 유급휴가 추가보장, 화물연대 활동 보장, 조합원이란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숨진 조합원의 빈소는 유족 뜻에 따라 1일 전남 순천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할 예정이며, 장례는 이날부터 삼일장으로 치러진다.
화물연대는 이번 장례를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진행한다. 발인은 3일 엄수되며, 전남 광양에서 화장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실적 신기록을 세우며 반도체 ‘봄날’이 도래했지만, 안심할 때는 아니다.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에 힘입은 메모리 초호황 국면은 언젠가는 꺾일 것이고, 반도체·AI 기술 생태계 자립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중국의 추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손꼽히는 반도체 연구자·전략가로 최근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사이언스북스)을 출간한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넘어서는 ‘맞춤형 메모리’ 요구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며 한국 기업들이 “메모리 산업의 변곡점”을 맞아 시장 점유율 확대를 넘어서 “추론 중심 AI 시장에서 메모리의 역할을 더욱 확장하는 기술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이 제조업 AI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는 컴퓨팅과 산업 역량, 정치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반도체 기정학 시대를 헤쳐나갈 것을 제안했다.
그는 중국이 2030년대 중반 무렵 미국의 수출통제로 차단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에 근접하는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아닌, 냉철하게 중국 기술 수준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기초과학 협력이나 중국 유학생 유치를 통한 중국 내 ‘지한파’ 만들기도 제안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성과급 배분과 관련해서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지급”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전작 <반도체 삼국지>에서 기술 패권 경쟁의 틀에서 한·중·일 반도체 산업을 조망하며 미래 전략을 제시했다. “2040년쯤 중국에서 ‘2020년대 한국 메모리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AI 맞춤형 메모리라는 큰 시대 흐름을 놓쳐서 일본 반도체처럼 쇠락했다’는 책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간을 집필했다는 그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책에서 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주소와 함께 권위주의 체제에서 오는 한계까지 지적했다. 미국의 수출통제는 실패한 것인가.
“일종의 양날의 검이었다. EUV 등에선 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가 잘 작동한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출 제한도 중국 AI 모델 가속화를 상당히 억제했다. 하지만 오히려 중국으로 하여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란 식으로 자체 기술 생태계 공급망 확보에 더 매달리도록 한 측면도 있다. 중국이 (핵심) 기술 요소 100개 중 한 12개 정도를 확보했다고 보는데, 과거 1%였다가 10%가 넘은 것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시그널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이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은.
“산업 변혁 과정에서 전혀 쓰일 것 같지 않던 기술이 툭 튀어나오는 경우를 파괴적 혁신이라고 한다. 중국 전기차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미국·일본 등이 쌓은 내연기관차 ‘해자’(moat·산업 측면에선 지속적 시장 우위를 의미)를 넘으려 전기차를 시도했다가 세계 탑 수준의 기술을 갖게 됐다. 반도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국 전역의 화웨이 팹, 산학협력센터에서 EUV 대체 광원, 광학계 기술, PR(포토레지스트) 소재가 동시다발적으로 개발 중이다. 여기서 살아남는 게 나오면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일찍 성장 곡선에 올라타게 된다. 중국산 반도체 장비·소재·기술이 글로벌한 영향을 미치는 위기가 올 수 있다.”
-특히 우려하는 중국 반도체 기술은.
“지금은 다들 EUV 없이 5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이 불가능할 거라고 하지만,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한 EUV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중국의 가속기 기반 광원 기술이 EUV 다음 세대 기술이 될 수도 있다. 빠르면 2030년대 중반 시제품(프로토타입)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중국 SMIC가 TSMC, 삼성에 비해 10년 정도는 뒤쳐져도 결국 한 자릿수 공정(초미세 공정) 안에 들어온다.”
-딥시크의 새 V4 모델에 들어간 화웨이의 AI칩은.
“딥시크도 가능했다면 엔비디아 칩을 썼을 것이고, 아마 모델도 지난해 공개했을 것이다. 다만 중국 기술이 초반에는 성능이 조야하고 세계 수준에 비해 처지지만, 반복을 통해 기술 개선을 달성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의 자체 AI 소프트웨어 생태계 ‘무사’가 엔비디아 쿠다(CUDA)와 호환되면서 GPU와 화웨이 ‘어센드’ 칩 같은 NPU(신경망처리장치) 기반 칩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중국 AI 데이터센터 클러스터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전력을 신재생에너지에서 충당하는 마이크로그리드 기술을 가장 먼저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협력할 여지는.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중국과 충분히 학문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기초과학은 중국이 잘하기 때문에 배울 건 배워야 된다. 다만 현업의 난제나 (미국의 기술통제 등) 이슈가 걸린 분야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에 중국 학생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지한파, 친한파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 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중국 엔지니어를 많이 만들면, 이들이 중국에 돌아가도 한국 생태계를 경험했기 때문에 우군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첨단기술 분야 대중국 접근을 평가한다면. ‘반도체판 존스법’(미국 선박만 미국 항구에 올 수 있도록 규정한 법률) 같은 보호무역입법 가능성까지 언급했는데.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통제는 오히려 DUV(심자외선) 장비까지 포함하는 등 강화됐다. GPU 일부(엔비디아 H200칩)는 수출을 풀었지만 중국의 자체 풀스택 AI(데이터 수집부터 모델 개발, 서비스 배포 및 하드웨어 최적화까지 전체 과정을 아우르는 모델)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고삐는 쥐려고 한다. 트럼프 정부는 대중국 기조에 신경쓰기보다는 범용인공지능(AGI) 선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내에 최대한 많은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를 지어서 초인공지능이라는 전략핵무기에 준하는 새 무기를 선점하고, 중국은 견제하는 정도라고 본다. 메모리 위주 AI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해외 반도체 의존도를 우려해 미국 내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50% 이상은 미국산을 쓰라고 법제화할 수도 있다.”
-메모리 초호황이 얼마나 지속될까.
“메모리 사이클 자체는 적어도 1년 또는 1년 반 이상, 최소 2027년 하반기까지는 갈 것으로 본다. 메모리 장기 공급계약서를 보면 그 정도인데, 문제는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객사의 필요에 맞게 최적화하는 ‘메모리 파운드리’를 제안했는데.
“메모리가 점점 병목이 되는 상황에서 팹리스들이 파운드리에만 하던 요구를 메모리 기업들에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 터보퀀트(TurboQuant)는 대표적인 메모리 압축기술인데, AI 모델 접목을 넘어 메모리 설계 과정에서부터 시도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메모리 산업이 다음 단계로 바뀌는 변곡점이다. 한국 기업들이 감수성을 갖고 익숙했던 산업의 문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에 대비해 새로운 기술 개발 주기와 연구개발(R&D) 전략을 정비해야 한다. 메모리를 수요·공급 차원에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 AI 시장이 추론용 AI로 바뀌고 있는 신호를 잘 캐치해서 메모리의 역할을 더 확장해야 한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보다는 메모리 병목 해결을 위한 기술적 기여 전략이 중요하다.”
-반도체 기정학 시대에 한국이 가진 레버리지는.
“중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제조업이 위축되고 있지만, 반대로 M.AX(제조업 AI전환) 기반을 갖춘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독일·일본은 제조업은 강할 지 몰라도 AI 반도체 면에선 약하고, 중국은 서구 접근성이 떨어진다. 한국은 컴퓨팅 인프라와 정치적 안정성, 산업 성숙도, 에너지 인프라, 제조업 업력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나라다.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M.AX를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어 턴키 방식으로 (수출)하면 산업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회사가 제대로 대응 못하면 구성원들의 신뢰를 잃고, 떠나서는 안 되는 직원들이 경쟁사로 갈 경우 회사에 장기적으로 손해가 될 수 있다. 노조 입장에서도 너무 과한 현금 요구는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반도체 제조업은 주기적으로 그 다음 세대 공정·장비 업그레이드에 대규모로 투자해야 한다. 성과급과 주주환원 이후 50조가 남는다면 라인 2개, 100조면 라인 4개를 깔 수 있는데, 이는 3년 후의 이익 수준과 맞닿아 있다.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지급이 한 방안이다. 실리콘밸리는 직원들이 현금 자체는 많이 안 받지만 주식으로 백만장자가 됐다. RSU 현금화 시점을 몇 년 후로 설정하면 회사는 현금 흐름을 관리할 수 있고, 노조도 이익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받게 된다. 회사는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노조도 미래 가치에 베팅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물음표에 가깝다. AI가 채용 규모를 감소시켰는지, AI로 기존 일자리가 줄었는지, AI가 인간을 정말 대체하고 있는지를 둘러싼 논의는 많지만 뚜렷한 인과관계는 드러나지 않았다.
반면 AI를 둘러싼 노동시장의 공포는 실재한다. AI의 영향을 과대평가해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AI 개발기업이 노동자에게 심는 공포, AI가 업무 현장에 파고들 때마다 증가하는 두려움이 일터에 혼재돼 있다.
경향신문은 5일 책 의 저자 마크 그레이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수석 경제학자에게 AI와 노동시장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오랜 시간 지켜본 이들은 “AI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접근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라고 짚었다. 논의의 초점이 AI 도입과 일자리 증감에만 맞춰지면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게 되고, AI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입맛에 맞게 AI-노동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일자리의 소멸이 아니라 일자리의 재편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레이엄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는가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라고 했다. 오 실장도 AI가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노동을 재편한다고 했다. 그는 “공포도 과장이지만 안심도 착각”이라며 “AI가 이끄는 고용 영향은 대규모 실업보다는 점진적 고용 대체와 업무 재배치, 직무 변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AI 도입 이후 노동시장의 ‘약한 고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자리 질의 변화를 우려했다. 이 수석은 “중소기업 노동자는 (기술 변화로 인해) 이동한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통계적으로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얼마나 일자리의 질이 악화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워 더 문제”라고 했다.
노동시장의 약자부터 AI의 영향을 받게 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레이엄 교수는 AI가 일자리 조정에 미치는 영향을 시장에만 놔두면 안 된다며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자동으로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핵심은 “기업이 AI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정부의 정책과 규제로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세 사람이 말하는 일자리 변화의 핵심은 해고가 아니다. 이들은 당장 체감되는 충격을 일자리 소멸이 아니라 신규 진입의 축소로 봤다. 기존 일자리가 한꺼번에 없어지기보다는, 업무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력 유입이 줄어드는 방식이다. 반복 업무는 AI로 넘어가고, 남은 일은 더 복합적이고 숙련이 필요한 형태로 바뀌면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기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수석은 “엔트리 레벨(신입) 일자리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경험을 쌓고 암묵지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며 “이 단계가 축소되면 향후 숙련과 전문성 형성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엔트리 레벨 채용 축소는 굉장히 심각하게 벌어지는 현상이며, 기업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레이엄 교수도 “초급 직무는 반복적인 업무가 많아 자동화되기 쉽고, 이런 역할이 (AI로 인해) 사라지면 노동시장 진입 경로 자체가 줄어든다”고 했다. 오 실장 역시 “상당 부문에서 AI의 영향은 기존 일자리를 없애기보다 신규 발주 중단이나 신규 채용 감소 형태로 나타난다”며 “즉 기존 일자리가 아니라 미래 일자리를 공격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 수석은 이같은 현상을 ‘죄수의 딜레마’로 칭했다. 기업으로서는 당장의 비용 절감을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 숙련 인력 공급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단순 업무를 통해 숙련이 단계적으로 형성됐지만 지금은 그 과정이 압축되거나 생략되고 있다”며 “향후 5년 동안 이 흐름이 이어지면 수요는 유지되는데 공급이 부족해지는 구조적 공백이 생기고, 노동시장 재생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 실장은 신규 채용 감소를 AI 영향으로 단순화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AI는 절대 단독으로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비즈니스 모델 변화, 자동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동한다”며 “AI 도입이 없었다면 기업들이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을지 되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이 아니라 기업의 고용 전략이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졌을 가능성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세 사람은 ‘직무 재편’을 AI 시대 노동 변화의 핵심으로 꼽았다. 이들은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업무 단위에서 자동화가 이뤄지고, 남은 업무를 중심으로 직무가 재구성된다고 봤다.
이 수석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공포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일자리 재편과 관련된 변화”라며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재편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멸과 재편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 논의하면 정책 대응도 방향을 잡기 어렵고, 논의가 일자리 문제 그 자체보단 노동시장에 밀려난 이들을 염두에 둔 복지나 기본소득 문제로만 흘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는가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며 “직업 전체가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고 개별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직무가 재편된다”고 했다. 이어 “콜센터는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더 강하게 모니터링되고 더 강도 높은 형태로 변화했다”며 “AI 도입 이후 노동자는 임금, 고용 안정성, 자율성, 그리고 노동 조건에서 모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오 실장은 “AI는 해고 통지서보다 업무 분장 변경표를 들고 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신기술이 언제나 일자리를 위협해 왔지만, 실제보다 공포가 과장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인터넷과 전자상거래가 확산하던 시기에도 여행사, 유통·출판 등 직무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지만, 결과는 직무의 소멸보다 재편에 가까웠다.
오 실장은 AI 시대에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날 것으로 봤다. 그는 “대부분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자연 감소분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변화가 나타났다”며 “AI 역시 인간 노동을 전면적으로 대체하기보다 공존하는 ‘헤테로메이션(heteromation)’ 단계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재편의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일자리가 유지되더라도 어떤 형태로 재편되느냐에 따라 노동의 질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AI의 충격은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도 더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수석은 “현재 AI 담론이 로펌·개발자 등 상위직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며 “실제 대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은 여성, 비정규직, 사무보조 등 저임금 직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집단은 일자리를 잃어도 다른 일자리로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통계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동한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레이엄 교수도 “생산성 향상이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며 “AI는 노동자를 더 쉽게 감시하고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라고 했다.
오 실장은 “무노조 사업장이나 외주화된 일자리, 플랫폼 노동이 AI 도입의 실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업으로서는 저항이 적은 영역부터 자동화를 적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에선 이미 AI 도입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배달 플랫폼은 과거 현장에서 배차를 조정하고 노동자를 관리하던 ‘중간관리자’ 역할을 AI 기반 알고리즘으로 대체했다.
배달 플랫폼의 경우 일자리 ‘양’은 오히려 늘었다. 수십만명의 배달 라이더가 새로 유입되면서 고용 규모 자체는 확대됐다.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은 효율성만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오 실장은 “알고리즘은 융통성이 없다”며 “비 오는 날 몇 시간 연속으로 일하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판단 없이 매분 매초 일감을 제시한다”고 했다.
상황이 복잡한데도 정부 정책 방향은 AI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통상부는 최근 숙련된 제조업 ‘명장’의 기술을 AI에 학습시키는 기업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HD현대중공업에선 이미 조선소 명장의 기술을 AI가 익히는 중이다. 오 실장은 “자본의 공포 마케팅에 정부가 세금을 들여 지원하는 꼴”이라고 했다. 그는 “실패가 예정된 사업”이라며 “명장의 기술은 각각 책 한 권을 써야 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것들인데, 이를 표준화하겠다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 노동의 원칙을 몇 가지 제시했다. 그레이엄 교수는 “정부는 단순히 AI 도입을 장려하는 것을 넘어, AI가 활용되는 방식을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 보호 기준 설정, 작업장 내 활용 규제, 이익의 공정한 분배 보장, 그리고 노동자의 전환 지원을 포함한 정책적 고민을 정부가 해야 한다”고 했다.
오 실장 또한 정부가 해야 할 과제를 세 가지로 제안했다. 신기술 도입의 조건과 규칙을 노사 간 협상을 통해 정립하고 AI 도입에 따른 고용 영향과 작업장 위험성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와 알고리즘을 검증할 수 있는 공공 역량을 구축하는 일 또한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선 노사가 AI 도입을 두고 협상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직접 협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이 수석은 “AI 활용은 사회적 선택의 문제”라며 “정책적으로 노동 대체가 아닌 노동 보완형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AI를 실질적으로 활용을 많이 하면서 정책적, 기술적으로 고민할 토대가 갖춰진 나라”라며 “그런 면에서 조금 더 정부의 역할을 보여줄 여지가 있고, AI와 노동과 관련된 정책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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