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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이혼 [오항녕의 독사관견 讀史管見]율곡이 트럼프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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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진숭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6-05-0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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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이혼 개, 돼지 같은 황제
“한고조는 본래 게으르고 무례하며, 그가 부리던 자들은 부귀공명에만 마음이 있던 자들입니다. 한 문제는 그저 편안하고 조용한 것에만 안주하면서 근근이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데만 그친 인물이었습니다. 광무제는 그릇이 한고조에 미치지 못합니다. 국정을 삼정승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다 하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당 태종은 아버지를 위협하고 군사를 일으켜 형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으며, 동생의 처를 빼앗았으니, 개, 돼지와 같습니다.”
율곡 이이가 쓴 <동호문답(東湖問答)> 중 한 부분이다. 율곡은 34세(1569·선조 2) 때 홍문관 관원으로 독서당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들어갔다. 홍문관은 임금의 자문, 강의를 담당하는 관청이고, 거기서 관원들에게 공부하라고 휴가를 주었다. 그러니 독서당은 홍문관 소속 연구소인 셈인데, 율곡 때에는 한강 동호대교 초입인 옥수동에 있었다. 독서당 자리에 옥수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동호문답>은 연구 기간 중 제출한 월별 과제였다. 주인과 손님이 문답하는 구성인데, 율곡은 이 보고서에서 정치의 원칙, 목표, 방법부터 당시의 현안까지 망라해, 갓 즉위한 임금 선조에게 바쳤다. 선조는 율곡보다 열여섯 살 어렸으니, 아들뻘이었다.
율곡은 조선 정치가 지향할 목표로 첫째, 백성이 편안한 세상, 둘째, 이를 위해 임금과 신하가 서로 존중하며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에 두었다. 대부분의 진리가 그렇듯 사람들의 이상은 보편적일수록 간명하다. 물론 그 단순한 이상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어렵다는 생각’이야말로 이상의 실현을 더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맘을 굳게 먹는 입지(立志)가 첫걸음이다.
낯선 사대(事大)
어떤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끌어주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대(事大)라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아… 중국 황제를 저렇게 대놓고 비판하는 걸 보면… 요즘도 저렇게 못하지 않나?”
조선의 사대주의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터에, 율곡이 중국 황제를 옆집 사람 흉보듯 말하니까 어색했던 것이다. 사대란 말이 새삼 낯선 모습으로 다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이상이 있어야 정치가다
율곡이 거론한 중국 황제들은 모두 역사상 셀럽 황제들이었다. 한고조는 항우와 패권을 다투다 한나라를 건립한 유방이다. 율곡이 한고조를 비판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현인 역이기를 만날 때 의자에 걸터앉아 발을 씻기며 맞았기 때문이다.
이때 역이기는 간단히 목례만 하고 “그런 태도로 현자를 대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없다”고 직언을 했다. 그제서야 유방은 자세를 바꾸고 옷도 차려입은 뒤 다시 정중히 맞았다고 한다. 사실 한고조의 경우는 율곡의 비판이 억울할 수 있다. 역이기에게 사과까지 하고 잘못을 바로잡았는데 율곡에게 지적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 태종은 윤리적인 흠결이 있기에 율곡의 말에 토를 달기 어렵다. 무엇보다 당 태종의 평가에는, 지난달 칼럼의 주제이기도 했던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간접 비평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당 태종은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 장군에게 패하고 돌아갔다고 국사 시간에 배웠기에 좀 급이 낮은 군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재위 시대는 중국사에서 ‘정관지치(貞觀之治)’라고 부를 정도로 치세를 이룬 인물로 평가되곤 한다. 나중에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책도 발간되어 후대 군주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정관은 당 태종의 연호이고, 정요란 정치의 핵심이라는 말이니까, 당나라 스타일의 국조보감(國朝寶鑑)인 셈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으나, 세조가 폐지한 집현전을 성종 때 다시 설치하면서 이름붙인 홍문관이라는 명칭은 당 태종이 진왕(秦王)으로 있을 때 싱크탱크 이름이기도 했다.
교과서의 맹목성
내가 보기에 율곡의 중국 황제에 대한 비평은 당시 자료를 조금이라도 차분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리 낯선 장면이 아니다. 조선과 중국 사람이 직접 만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연행록(燕行錄·북경 다녀온 기록)이나 외교사절로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보고만 보더라도 그렇다.
명청(明淸) 교체기, 만주족의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중국 사신으로 다녀왔던 청음 김상헌은 “명나라 조정은 내관(內官·환관)이 정권을 독단하며 능력 있는 인물이 배척받고 언관(言官)이 파면되어 조정을 떠난다”고 보고했다. 이어 병자호란 뒤에 “숭정 황제(명나라 마지막 황제 신종(神宗))가 국정에 나태하여 나라를 망친 일을 거울로 삼으라”고 인조에게 주문했다. 율곡이나 청음뿐 아니라, 그 많은 연행록을 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맹목적 사대주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맹목적인 시각을 다른 데서 발견했다. 2020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검토하던 중 ‘친명 의식에 빠진 양반들을 비판하다’라는 타이틀 아래 제시된 사료를 보았다. “7월28일. 아하! 명나라 왕의 은택은 이미 다 말라버렸다. 중국에 사는 선비들이 자발적으로 오랑캐의 제도를 좇아서 변발을 한 지도 백 년이나 되었건만, 그래도 오매불망 가슴을 치며 명나라 왕실을 생각하는 까닭은 무슨 이유인가? 중국을 차마 잊지 않으려는 까닭이다.”
내 안의 냉소와 폭력
이 사료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7월28일, ‘관내정사(關內程史)’에 나오는, 그 유명한 ‘호질(虎叱)’의 일부분으로, 연암이 변발하지 않은 중국인을 만난 뒤 자신의 소감을 적은 글이다. 이 글은 교과서 집필자들이 붙인 제목과는 달리, 연암이 청나라 정부가 변발을 강요하는 것을 수준 낮은 방책이라고 비판하면서 했던 말이다. 여기서 연암의 ‘친명 의식에 대한 비판’은 찾을 수 없다.
이처럼 교과서의 타이틀과 사료가 일치하지 않았던, 아니 정반대로 왜곡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집필자 마음에 자리 잡은 조선 사람들의 사대주의에 대한 냉소에 있다고 생각한다. 집필자들은 연암의 글에서 무리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대주의’를 벗어난 흔적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이 냉소와 조바심의 배후에는 빨리 근대화되었으면, 하는 서구식 근대주의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시대의 예감
최근 뉴스 하나가 세계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4월10일 SNS에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추락시킨 사진을 공유하며 올린 글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 아마 한국 정치가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에서 일어난 행위의 부당성을 지적한 첫 발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후 추가 트윗이 나왔는데, 그중 다음 말을 나는 시민들과 기억하고 싶다.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픕니다. 나의 필요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으면 미안한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 보편적 인권과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런 인지상정이야말로 냉소와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국익에 앞서 인권을 가치로 제시한 점도 뿌듯하다. 이익과 실용도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두어야 당당하기 때문이다.
역사학도로서 감히 예언하자면, 이재명 대통령이 올린 트윗은 이 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살기 시작했다는 징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제 서서히 이 땅의 역사는 회복된 인지상정과 상식 위에서 꼬이지 않은 심성으로, 또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율곡과 연암의 글을 읽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 샤자레 타예베 여자초등학교에 대한 미국의 폭격을 보며 그동안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흔들렸는데, 그 불안과 낙담 속에서 길어 올린 결코 작지 않을 듯한 희망이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유럽의회에서는 중요한 결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이 원칙을 공통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표결 결과는 찬성 447표, 반대 160표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를 두고 “사회적 변화의 큰 걸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논의의 불씨가 된 것은 바로 ‘지젤 펠리코’ 사건입니다. 프랑스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집단 성폭행 사건인데요. 지젤의 남편은 음식과 음료에 약물을 타 아내가 의식을 잃게 만든 뒤, 10여년 동안 인터넷으로 모집한 50여명의 남성들에게 성폭행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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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법정 공방의 핵심은 ‘동의(consent)’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였습니다. 프랑스의 기존 법 체계에서는 폭력, 협박, 강제, 기습 같은 물리적 강제력이 있어야 강간이 성립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지젤이 약물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일부 변호인 측에서는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노(no)”라고 말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동의가 없으면 강간’이라는 원칙을 법적으로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성적 관계에서의 동의는 폭력·권력관계·약물·수면·질병·장애 등 다양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결국 프랑스 의회는 지난해 10월 법을 개정해 “명시적이고 자발적인 동의 없는 모든 성행위는 강간”이라고 정의를 바꿨습니다.
그동안 EU 회원국들은 강간 정의를 제각각 적용해왔습니다. 어떤 나라는 폭행이나 협박 같은 물리적 폭력이 있어야 강간으로 인정했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폴란드 등은 ‘노는 노(no means no)’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피해자가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가 핵심이었던 겁니다.
반면 스웨덴·벨기에·덴마크·스페인·네덜란드 등은 ‘예스만 예스(only yes means yes)’ 원칙을 도입했습니다. 명시적이고 자발적인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모두 강간으로 보는 방식입니다.
지젤 펠리코 사건은 유럽 전체에 ‘동의’ 개념을 법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논의를 촉발했습니다. EU는 이번 결의안에서 “침묵, 저항의 부재, 과거의 동의나 관계 여부 등은 동의로 해석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 에빈 인시르는 “이번 입법 추진은 성관계에서 ‘예스’만이 진정한 동의임을 보장하고, EU 내 모든 성폭력방지법이 동의 원칙에 기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여성이 저항하거나 상처를 보여야만 ‘노(no)’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의 부재’ 자체가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U 차원에서 범죄를 공통 기준으로 규정하면 회원국 간 법적 차이가 줄어들고, 국가 간 수사와 판결 협력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강간죄가 EU 공통 기준에 포함되면 모든 회원국이 최소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법적 사각지대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역시 더 일관되게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범죄 정의가 같아지면 피해자가 다른 EU 국가에서 범죄를 당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증거와 판결을 서로 인정하게 되면, 범죄자가 국경을 넘어 도주하더라도 처벌 가능성이 커집니다.
피해자 지원 체계도 강화될 수 있습니다. 법률 자문, 의료 지원, 전문 상담 등 다양한 피해자 지원 서비스를 모든 회원국이 일정 수준 이상 제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느 나라에 있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결국 시민들은 다른 EU 국가에서 생활할 때도 자신의 권리가 동일하게 보호된다는 신뢰를 갖게 됩니다. 이는 EU가 강조해온 “자유·안보·정의의 영역”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논란은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2024년 논의 당시 “강간죄는 EU 조약상 초국경 범죄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EU가 공통 형사 기준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형사법은 국가 주권의 핵심 영역인 만큼, EU가 유럽 전체에 적용되는 정의를 내릴 권한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번 결의안 통과가 법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 인식 개선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성폭력 문화’는 성에 대한 해로운 고정관념과 잘못된 신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유지되고, 때로는 이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진다”며 “이번 결의안은 이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논의는 단순히 법 조항 하나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성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동의”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유럽 전역에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EU 집행위원회가 실제 입법을 추진하는 일입니다. 과연 ‘지젤이 쏘아올린 공’은 유럽 전체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 백민정 기자 mj100@khan.kr
[여적] ‘예스 민즈 예스’
2024년 프랑스 사회는 남편이 건넨 약물로 의식을 잃고 50명의 남성에게 9년간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 경악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아 동의한 줄 알았다”고 항변했지만, 피해자인 지젤 펠리코는 “부끄러움은 가해자들 몫”이라며 이들을 법정에 세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의회는 폭력·협박이 있어야만 인정되던 강간죄를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으로 규정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피해자의 저항’이라는 낡은 신화를 거부한 사례는 스페인에도 있다. 2016년 한 축제에서 18세 여성을 남성 5명이 집단 성폭행한 ‘울프팩(늑대 무리)’ 사건이다. 1심 재판부가 “피해자가 항거 불가능할 정도의 폭력이 없었다”며 강간죄 대신 성적 학대죄를 적용하자 분노한 민심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강간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성관계 시 명시적 동의가 없으면 강간으로 간주하는 ‘성적 동의에 관한 포괄적 법률’ 제정(2022년)의 동력이 됐다.
두 사례는 강간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전환을 의미한다. 명확한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가 핵심인 ‘노 민즈 노(No means no)’를 거부하고,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만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됐다고 보는 ‘예스 민즈 예스(Yes means yes)’ 원칙을 세운 것이다. 유럽연합도 지난 28일(현지시간)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며 이 원칙을 보편적 인권 기준으로 제시했다.
한국의 강간죄는 73년째 ‘항거 불능’ 상태임을 증명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틀에 갇혀 있다. 법정은 피해자의 저항 여부를 따지는 심문장이 된 지 오래다. 비동의 강간죄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수차례 폐기됐다. 유엔이 강간죄를 ‘동의 부재’로 정의할 것을 권고했음에도 무고죄 남발 우려 등을 이유로 요지부동이다. 우리와 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이 2023년 ‘부동의 성교죄’를 신설한 것에 견주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국제사회의 변화는 강간죄 개정을 언제까지 유예할 것이냐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여성차별철폐협약 비준국인 한국이 인권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현실을 국회와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세상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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